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고트 왕국 (문단 편집) ==== [[로마 제국]]의 봉신 ==== 2~3세기 [[흑해]] 해안가에 거주하면서 [[로마 제국]]을 상대로 침략을 일삼았던 [[고트족]]은 3세기 후반 무렵에 드네스트르 강을 사이에 두고 테르빙기(Thervingi) 족과 그뤼퉁기(Greuthungi) 족으로 분열되었다. 테르빙기는 [[고트어]]의 트리우(triu)에서 파생된 단어로, "숲 속의 사람들"을 의미하며, 그뤼퉁기는 "자갈이 많은 땅"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주로 그리스 출신이었던 역사가들이 고트족을 구별짓기 위해 자갈이 많은 흑해 해안가에 주로 살았던 고트인들을 '그뤼퉁기'라고 칭하고 숲속에 주로 사는 고트인들을 '테르빙기'라 칭했으리라 추정한다. 테르빙기족은 나중에 'Visigoths(서고트)'라고 칭했는데, 이는 "선한 고트인"이라는 뜻이다. 반면 그뤼퉁기는 'Ostrogoth(동고트)'라고 칭했는데, 이는 "고귀한 고트인"이라는 의미이다. 329년, 테르빙기의 왕 '''[[아리아리크]]'''가 [[도나우 강]]을 건너 로마 제국의 모이시아와 [[트라키아]] 속주를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출격해 이들을 격파하고 고티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받았다. 331년, 그는 [[사르마티아]]인들을 침략해 복속시킨 뒤 로마 제국에 속한 발칸 반도로 쳐들어와서 현지 로마군을 격파하고 각지를 황폐화시킨 뒤 돌아갔다. 332년 3월 또는 4월 초,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를 위시한 대규모 야전 기동대가 다뉴브 강에 새로 건설된 석조 다리를 건너 고트족의 영역으로 쳐들어갔다.([[콘스탄티누스의 고트족과 사르마티아 원정]]) 이들은 고트족 마을들을 불태우고 가축들을 포획했으며, 고트족이 쌓아뒀던 식량을 모조리 빼앗았다. 고트족은 급히 일찍이 복속시켜뒀던 사르마티아인들의 영역인 크림 일대로 도피했지만, 로마군이 거기까지 쫓아온데다 4월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추워서 상당수가 얼어죽자 어쩔 수 없이 로마군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 4월 20일, 양군은 오늘날 불가리아 바르나 인근에서 격돌했는데, 전투 결과는 로마군의 완승이었다. 오리고 콘스탄티니 칙령에 따르면 10만에 달하는 고트족이 기아와 추위로 죽었고 다수가 전사하거나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로마 황제에게 평화를 청했고, 콘스탄티누스는 그의 아들인 [[아오리크]]를 포함한 고급 인질을 받고 제국에 매년 공물을 바쳐야 하며, 40,000명의 병력을 로마군에 공급해 제국 국경 방비에 협조하게 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리하여 고트족은 제국의 봉신이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는 원로원으로부터 고티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두 번째로 받았으며, "Debellatori gentium barbararum(야만인 근절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추가로 받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인질로 보내진 '''[[아오리크]]'''는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 고트족에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340년대에 고트족을 이끌고 도나우 강을 건너 모에시아를 침략해 약탈을 자행했다. 두로스토로스의 악센티우스는 아오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이 [[기독교]]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고 기술했다. 350년 [[콘스탄티우스 2세]]로부터 고트족의 왕으로 인정받고 보조금을 지불받는 대가로 로마 제국의 영역을 공격하지 않기로 하는 평화 협약을 맺었다. 아오리크의 뒤를 이어 테오빙기의 왕으로 등극한 '''[[아타나리크]]'''는 365년 [[프로코피우스(반란자)|프로코피우스]]가 [[발렌스]]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프로코피우스와 손을 잡고 3천 병력을 파견했지만, 프로코피우스는 366년 5월 진압군에게 패한 뒤 부하들의 배신으로 생포된 후 처형되었다. 고트족 부대는 이 소식을 듣고 귀환했지만 도중에 로마군에게 제압당하고 억류되었다. 아타나리크는 발렌스에게 "프로코피우스가 자신을 로마의 합법적인 통치자로 내세웠기에 콘스탄티누스와 맺은 협약에 따라 보조군을 파견했을 뿐이다"라며 그들을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발렌스는 묵살했다. 3천 명의 고트족 전사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아마도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에 분노한 아타나리크는 트라키아를 침략하며 지방의 농장과 포도밭을 약탈하고 교회를 파괴했으며, 기독교 신자들을 처참하게 죽였다. 발렌스는 이에 보복하고자 367년 봄에 도나우 강을 건너 고트족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아타나리크는 정면 대결은 필패라고 판단하고 험지에 숨은 채 적군이 깊숙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허점을 찔러 급습한 후 반격이 들어오기 전에 사라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로마군은 일부 고트족을 죽이고 집과 들판, 농작물을 불태웠지만 고대했던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발렌스는 367년 가을 카르마티아 산맥에 숨은 적을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귀환했다. 368년 봄, 발렌스는 원정을 개시하려 했지만 다뉴브 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중단했다. 그 대신, 그는 군대로 하여금 요새를 건설하게 했다. 369년, 강의 수위가 내려가자 원정을 재개했다. 아타나리크는 이번에도 같은 전술을 사용했지만, 로마군은 소규모 기동대를 각지에 파견하여 숨어있는 적을 포착하여 섬멸하는 전술로 맞대응했다. 아타나리크는 적이 분산된 점을 이용하여 지휘부가 있는 적군을 급습해봤지만 격파당했다. 하지만 발렌스 역시 적을 포위 섬멸하지 못했고, 전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결국 양자는 평화 협약을 맺기로 합의하고 369년 9월 다뉴브 강 한 가운데의 배 위에서 아래의 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1. 고트족은 로마 제국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모든 로마 인질을 돌려보낸다. >2. 로마인과 고트족의 교역은 도나우 강의 두 지점으로 제한한다. >3. 고트족은 로마로부터 보조금을 지불받는 대가로 보조군을 파견한다. >4. 로마는 고트족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고 더 이상 군사적 침략을 벌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로마 제국과 화해했지만, 여전히 로마 제국에 반감을 품고 있던 아타나리크는 고트족 내부에 스며든 로마의 국교인 기독교를 뿌리뽑고자 했다. 그는 선조들이 믿는 신에게 희생제를 바치고 신성한 형상을 세우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자는 거주지와 함께 불태웠다. 이리하여 많은 기독교 고트인이 살해되었는데, 그 중에는 고트족의 저명한 귀족이었으며 훗날 [[성인(기독교)|성인]]으로 시성된 사바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프리티게른]]과 [[알라비부스]]를 따르면서 고트족 전체가 양분되었다. 이후의 내전 양상이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지만, 프리티게른이 발렌스에게 아타나리크를 물리치는 걸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을 볼 때 아타나리크가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376년, [[훈족]]이 고트족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동고트족은 [[훈족]]에게 복속되었고, 서고트족은 훈족에 맞서 항전했으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로마로 피신하려 했다. 아타나리크와 프리티게른 모두 발렌스에게 도나우 강 이남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얌전히 살겠으며, 훈족이나 다른 적이 침공한다면 제국의 포이데라티(외원군)가 되어 열심히 싸우겠다고 제안했다. 발렌스는 고심 끝에 지난날 제국을 침략하여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아타나리크와 휘하 고트족은 받아들이지 않고 프리티게른과 그의 추종자들만 제국 내로 진입하게 했다. 그리하여 프리티게른을 따르는 무리가 도나우 강을 건너 로마 제국의 영내로 들어왔고, 아타나리크는 도나우 강 이북의 고트족 영역에 남아 프루트 강과 도나우 강 사이에 방어선을 설치하고, 나중에 '아타나리크 성벽'으로 알려진 요새를 건설했다. 그러나 훈족의 침략은 이 정도 대비로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침략이 갈수록 가속화되면서 고트족의 터전이 모조리 파괴되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양산되자, 대다수 고트족은 아타나리크를 버리고 프리티게른이 건너간 도나우 강 너머로 달아났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소규모 전사들과 함께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사르마티아 부족을 정복한 뒤 그곳에서 새력을 재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